님, 군산에 가보셨나요? 제 고향 군산은 빵집과 짬뽕으로 유명하지만, '근대화거리'로도 주목받고 있답니다. 한때 군산은 앞만 보고 달리는 도시였습니다. 군산의 최전성기는 일제강점기였는데,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개발된 도시였기 때문이죠. 이후에도 군산은 미군기지, 농공단지, 새만금 개발에 기대어 끊임없이 성장을 갈망했습니다. 심지어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마저 신청했을 만큼요.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군산은 성장이 멈추자 비로소 그림자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아픈 과거를 복원하고, 일본식 건물을 고쳐 만든 '근대화거리'가 조성됐죠. "부끄러운 역사를 왜 굳이 들추느냐"는 논쟁도 있었지만 군산은 상처를 외면하지 않기로 선택했고, 그 용기 끝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향 군산을 통해 배웠습니다. 아픔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성장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을요.

아픔을 드러내는 것은 도시든, 사람이든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잘 숨겨온 상처를 누군가에게 꺼내 보이는 일은 내 마음 깊은 방에 걸어둔 자물쇠를 여는 열쇠를 건네주는 일처럼 느껴지니까요. 열쇠를 쥔 사람이 내 방에 들어와 무슨 일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 열쇠를 받아든 누군가는, 방 안의 나를 일으켜 줄 수도 있다고요.

열매나눔재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삶의 가장 아픈 부분을 드러내야만 합니다. 스스로도 인정하기 힘든 아픔과 선택이 아니었던 길 위에서 받은 상처까지요. 저희는 믿습니다.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용감하게 마음의 문을 열어줄 때, 누군가 도와주러 들어갈 수 있다는 걸요.

혹시 님 곁에도 마음을 열고 있는 이가 있나요? 그 용기의 옆에 님의 마음이 함께 머물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자립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